비즈니스 세계의 화무십일홍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수명을 40년 정도로 본다. 세계를 호령하던 소니가 끝없이 추락하고 최고의 휴대전화 메이커 노키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오늘날의 시대를 살면서 반 세기에 이르는 시간을 한 우물만 파기는 굉장히 어렵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반세기의 급속한 성장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1세대 기업들은 대부분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그 속에서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기업도 있고 아예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바꿔버린 기업도 있다.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태어나고 늙어가는 오늘날에도 같은 자리에서 반세기를 지켜온 기업이 있다. 휄트 제조 업계의 독보적인 강자,대한엔드레스휄트(EndlessFelt)가 그 주인공이다. 창립한지 5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려한 붉은 꽃으로 피어 있는 대한엔드레스휄트를 통해 장수 기업이 가야할 왕도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반 세기를 이어온 작은 거인
대한엔드레스휄트(Endless Felt)는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Endless Felt’를 제조하는 기업이다.1960년 시작된 대한엔드레스휄트의 역사는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끝없이 약동하고 있다. 부산시 진구 전포동에서 시작된 대한엔드레스휄트는 초대 창업주(김동혁)와 선대 대표(김상열)를 거쳐 현재 조정교 대표와 김재욱 총괄본부장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이어져오고 있다.대한엔드레스휄트는 부산의 향토기업으로서 부산 경제의 기여하는 바가 크다. 오랜 기간 부산에 근거지를 두면서 국내 제지업체 점유율 70%이상을 점유하며 국내 휄트 제조의 1위 업체로 자리 매김했다. 이로 인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사회공헌에 힘쓰고 있다.창립 이후, 대한엔드레스휄트는 1974년 사상구 덕포동 현재공장으로 이전하여 2,000평 규모의 공장과 사무실을 갖추고 있다. 또, 1985년 장유면 대청리에 설립된 제 2공장 대한캔바스를 1997년 4,000평 규모의 김해 한림면에 공장을 확장 이전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한엔드레스휄트가 제조하는 대표적인 제품인 엔드레스휄트는 백상지나 포장지 등 각종 다양한 종이 제조공정에 사용하는 필수 소모품이다. 대한엔드레스휄트와 대한캔바스가 제조한 각종 휄트와 캔바스는 본사와 김해공장, 수원영업소를 거쳐 전국 각지의 제지회사와 전 세계 30여개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제지산업의 필수품, 휄트
회사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휄트는 베로 짠 섬유 직물이 끝없이 돌아가는 특수 섬유 제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휄트의 용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지 공정을 간단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지, 고지 등을 수집해서 큰 원통에 넣어서 약품과 함께 잘게 분쇄해야 한다. 이를 물에 깨끗이 씻어 희석하면 걸쭉한 죽 형태의 ‘재생펄프’가 만들어진다. 이를 여러 채에 거르고 가공하면서 깨끗한 새 종이가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종이의 습기를 흡수해주고, 종이의 형태를 만들어 주며 여러 공정에 운반해주는 것이 바로 엔드레스 휄트이다. 제지 산업에 있어서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소모품인 것이다. 이 외에도 대한엔드레스휄트는 DRYER SCREEN(CANVAS)과 BELT PRESS, CORRUGATORBELT 등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제지 공정의 초반에는 엔드레스 휄트가 종이의 형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데 반해, 마지막 공정은 드라이어 스크린의 역할이 크다. 종이를 다듬고 건조하는 공정에서 드라이어 스크린이 사용된다.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된 습지를 건조하기 위해 이를 롤러들 사이에 넣고 돌려야 하는데 종이만 넣고 돌리면 잘 찢어지고 건조가 잘되지 않기 때문에 종이를 감싸고 돌아가게 만든 것이 바로 드라이어 스크린이다. BELT PRESS란 제지 공정의 폐수처리 후 슬러지 탈수를 도와주는 제품이다. 세정과 표백을 위해 사용한 온갖 약품이나 오수를 처리하기 위해 찌꺼기들만 따로 빼내서 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 폐수 처리과정에서 나온 오물을 탈수하는 데 필요한 것이 벨트 프레스이다. 벨트프레스는 전 산업현장 폐수처리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CORRUGATOR BELT는 골판지박스 생산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Corrugator’란 말 그대로 골판지박스를 생산하는 기계이며, 그 기계에서 박스의 접착과 수분증발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과 노하우로 넘은 국경
대한엔드레스휄트의 세계시장 공략은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국내 제지사들의 수가 1/3로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엔드레스휄트는 세계 시장으로 시각을 좀 더 넓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대한엔드레스휄트는 단순히 물건을 팔고 돈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한다.대한엔드레스휄트만이 가지는 강점은 철저한 사후관리에 있다. 거래를 성사시키고 물건을 판매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고객사를 재방문하여 그들의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40년 가까이 회사에 근무해 온 임흥상 전무이사와 여러 부서장들의 노력이 지대했다. 그들은 오랜 경험에서 집약된 기술이나 노하우를 고객사에 전수하면서 그들과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물론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임 전무 또한 사업 초기에는 제지에 대한 기술이나 지식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고객사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그는 직접 고객사들의 생산 공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수십 년에 걸쳐 여러 거래처를 방문하다 보니 자연스레 고객사들마다 차이점이나 노하우가 임 전무의 자산으로 축적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한엔드레스휄트는 타사의 제품에 비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기술 자문 등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 3세계 시장에서 그 영업력을 마음껏 확대해 나가고 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원동력
대한엔드레스휄트는 다른 제조업체에 비해 직원들의 근속년수가 매우 길다. 10년, 20년은 기본이고 30년이 훌쩍 넘은 직원들도 함께 일하고 있다. 경영지원본부의 이병관 본부장은 회사를 보며 친정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애착과 주인의식이 강하다는 뜻이다. 또, 대한엔드레스휄트의 노동조합은 설립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 흔한 분규나 쟁의 한번 없었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사 어느 한쪽도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공동체만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조정교 대표의 온화한 리더십 아래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대 사장인 김상열 대표가 1994년 급작스럽게 운명하면서 회사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분명 회사의 재무제표나 신용 또한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대표이사의 부고는 회사의 모든 돈줄을 옥죄어버렸다. 마치 풍전등화와 같았다. 이 시절을 이겨낸 것도 직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병관 본부장은 금융 기관을 돌아다니면서 회사의 안정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자금의 융통이 회복되도록 노력했다. 노조 또한 직원들을 독려하여 오히려 종전 납기보다 빠른 납품을 가능케 해서 빠르게 사태를 회복시켰다. 결국 선대 대표가 운명한 1994년 회사는 오히려 더 높은 매출 실적을 기록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면서 달려오고 있다. 물론,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회사에서 대표의 유고로 인한 위기의식을 느낀 대한엔드레스휄트는 3년 뒤인 1997년, 마침내 주식회사로 전환하게 된다.
끝없이 돌아가는 대한엔드레스휄트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최근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높은 임금 인상률과 잦은 파업, 그리고 낮아지는 생산성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용광로는 점점 식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노동 시장 유연화를 두고 갑론을박 하는 사이에 중국, 일본 등 우리의 경쟁자들은 이미 큰 보폭으로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다. 나라의 부를 창출하는 가장 큰 주체는 기업이다. 이것이 우리가 많은 굴뚝과 용광로에서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이러한 상황에서 대한엔드레스휄트 또한 안심할 수는 없다. 비록 국내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해외에서는 여전히 우수한 브랜드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한엔드레스휄트의 거래사들은 주로 제3세계에 많이 포진해 있다. 이 시장이 발전할수록 휄트 시장도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 공격적인 시장개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대한엔드레스휄트는 제3세계에서 제지 기술에 대한 자문이나 설비 관리 노하우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시장 개척에 힘써가고 있다. 이러한 갖은 노력을 통해 대한엔드레스휄트가 그 이름처럼 끝없이 뻗어가는 미래를 보여줄 것이라 확신한다.